2025-01-03 HaiPress
음식과 관련된 대사성 질환
고칼로리·포화지방보다는
정제 탄수화물·설탕이 문제
제대로 된 식습관 안 알려주고
원인 외면한채 약·시술 처방
건강 망치게 하는 기성의학
한 남자가 있다. 노화가 시작되며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특정 종류의 약물을 처방하며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라고 조언했다. 남자는 저지방·고탄수화물 식단을 실천했다. 먹는 기름도 포화지방 대신 가공 씨앗 기름을 선택했다. 그렇게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멀리했다. 고기를 먹을 때도 기름 부위는 다 떼어 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이었다.
그 남자의 아들은 더 일찍 병에 걸렸다. 아버지처럼 고지혈증에 고혈압,통풍성 관절염,당뇨 전단계가 찾아왔다. 그를 키운 어머니는 영양사로 보건기관이 권장한 것을 정확히 따라 식단을 짰다. 아들 역시 알아주는 의대 교수로 모범생답게 모든 것을 올바르게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른 나이에 저승 문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단지 유전적 요인이었을까. 기성 의료계에 몸담은 그는 거대한 의문에 휩싸였다. 그러면서 건강을 책임진다고 믿었던 현대 의학이 어떻게 우리를 더 병들게 하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로버트 러프킨 지음,유영훈 옮김
정말중요한 펴냄,2만2000원
신간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원제 Lies I taught in medical school)'은 도발적 제목으로 질병과 노화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폭로한다. 저자는 UCLA 의대 교수이자 의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현직 의사인 로버트 러프킨이다. 괴짜 의사나 음모론자가 아니라 의학계 본진에서 만만치 않은 경력을 쌓아왔던 의료인이 '가르친 대로 살았더니,내 건강이 망가졌다'고 고발한 셈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못 충격적이다. 비만과 당뇨,고혈압,심장질환 등 모든 만성질환의 진짜 원인을 모르고 약과 시술에만 의존한 결과,지금의 우리는 심각한 건강 위험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한마디로 현대 의학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건강수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고 있고,당뇨 팬데믹이 시작됐으며 암과의 전쟁에선 암이 승리하고 있다.
당뇨병과 심장병,암,알츠하이머병은 사실 뿌리가 같다. 모두 대사(代謝)성 질환이다. 신진대사란 몸이 음식을 소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이다. 의대 수업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야이지만 건강한 삶의 열쇠를 쥐고 있다. 비만,당뇨병,중성지방,콜레스테롤 다섯 가지 중 세 가지에 해당하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되고,여기에 개인의 유전적 특질과 독소,생활 습관 등에 의해 각종 성인병의 발병 여부가 결정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의학은 세 가지 끔찍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첫째는 비만과 관련한 거짓말이다. 즉 '1칼로리는 1칼로리일 뿐'이란 말은 대표적인 거짓말인데,열량 자체만으로는 비만을 일으키기 어렵다. 체중 증가를 제어하는 핵심은 섭취한 열량 중 얼마를 태우고 얼마를 저장하느냐다. 여기서 인슐린이 개입한다. 인슐린은 열량을 주로 지방으로 저장하라고 세포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인슐린 신호가 켜지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비만은 단순히 칼로리가 아닌 인슐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슐린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주범이 탄수화물이다. 빵과 파스타,쌀,시리얼 같은 정제 탄수화물이 위험한 이유다.
둘째는 당뇨병에 대한 것인데,2형 당뇨병은 인슐린 치료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1형 당뇨병인 경우에는 인슐린을 만드는 장기인 췌장이 손상돼 인슐린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다. 과거에는 1형 당뇨병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 대세는 2형 당뇨병이다. 2형 당뇨병이 전체 당뇨병의 90%를 웃돈다. 2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음식물로 섭취한 탄수화물이 인슐린을 자극해서 생긴다. 인슐린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으면 우리 몸은 '인슐린 저항성'을 띠게 되며 세포는 인슐린에 점점 무덤덤해진다. 당뇨에 인슐린을 투여하면 혈당을 빼서 지방으로 저장하라고 우리 몸의 세포에 지시가 내려가므로 혈액 속에 포도당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긴 눈앞의 증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몸의 인슐린 수치가 증가하고,인슐린 내성이 더욱 악화돼 다른 만성질환을 만들어낸다. 미국 성인 중 10%가 2형 당뇨병 환자이며 38%가 당뇨 전단계다.
셋째는 심장병과 관련한 거짓말이다. 식이성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식단에서 지방을 추방하고 탄수화물을 끌어안았지만 여전히 심장병은 미국에서 사망 원인 1위 질병이다. 진짜 범인은 설탕과 탄수화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한때 사탕과 빵,가공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족을 사랑하고,가족과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설탕,가공 탄수화물,카놀라유와 콩기름 등 씨앗 기름,곡물을 피한다. 일일 일식도 한다. 농경 이전 자연식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새해를 맞아 '덜 먹고 더 운동하자'는 결심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라면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것,설탕을 멀리하는 생활습관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누가 대신 나의 건강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나 스스로 정보를 파악해서 나의 건강과 수명 문제를 선택할 때가 됐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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