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절 탈출하듯 떠난 완도 청년들 살기좋은 곳 만들래요

2024-12-20 HaiPress

3연임 이어가는 26세 '전국 최연소' 김유솔 완도군 용암마을 이장


"서울살이 6년만에 고향으로


다시 만난 완도에 푹 빠졌죠"


본업 살리려 문 연 사진관선


노인들 마지막 사진 찍기도


완도 청년들과 지역 살리기


청년가게 2개서 8개로 늘어

김유솔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이장은 요즘 '완도 살리기'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마을의 미래인 2050세대 유입을 위해 추진했던 활동들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24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이장이 된 그는 이달 초 마을 회의에서 3연임이 결정되면서 내년에 4년 차 이장 임기를 맞는다. 지난달에는 3년간의 이장 생활을 정리한 책 '제가 이 마을 이장인디요'를 출간했다.


전라남도 완도의 인구소멸 속도는 가파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5만명 남짓이던 지역 주민들은 매년 1000명씩 줄어 지난 11월 4만5702명으로 집계됐다. 평균 연령은 54.2세다. 전남 평균보다 5.2세,전국 평균보다 8.9세 높다.


김 이장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지역 유입인구보다 이탈인구가 많지만 임기를 거듭할수록 반등의 여지가 커지는 것을 느낀다"며 "중장년층의 귀농귀촌 문의가 큰 폭으로 늘고 청년들의 '한달살기'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대 여성 이장으로 활동하는 제 모습을 보고 정착한 사례도 생겼다"며 "구도심 청년상가에 청년들의 가게가 2곳에서 8곳으로 늘어난 점도 성과"라고 밝혔다.


김 이장의 역점 사업은 빈집 정비다. 2022년 전남형 청년마을사업을 통해 빈집을 활용하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유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유솔 이장(왼쪽 둘째)과 완도 토박이 청년들로 구성된 '완망진창'이 해변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당시 완도를 찾은 2030 청년 6명 중 3명이 이곳에 정착했다. 빈집 정비는 완도에 온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보금자리를 합리적인 비용에 제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범죄를 확산시킨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방치된 집이 지역 공동화를 가속화한다는 문제인식도 작용했다.


다만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을 때 집을 사놓고 거주하지 않아 폐가로 전락한 외지인들의 집이 난관이었다. 김 이장은 집주인들에게 직접 연락해 폐가를 정비하거나 아예 철거할 것을 설득하면서 변화를 이끌었다.


완도 토박이 청년 다섯 명과 의기투합해 만든 '완망진창'도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서로 완도에선 할 게 없다고 푸념하다 차라리 직접 판을 깔아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해변가 쓰레기를 줍고 사진전,취미수업도 열었다. 프리랜서 예술가 등 다양한 청년들을 완도로 끌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마을 어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손주학교'도 반응이 뜨거웠다. 지역민과 외지인,청년층과 고령층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완망진창'은 지난 7월 비영리법인에서 협동조합 '잔물결'로 다시 태어났다. 활동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는 김 이장의 리더십이 발휘됐다. 그는 "정부 지원 사업은 아무리 성과가 좋더라도 지원 기간이 끝나면 계속하기 어렵다"며 "잔물결을 통해 '한달살이'나 '워케이션'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면서 농어업 프로젝트를 넘어 도시재생이나 기후변화 같은 사회적 주제도 다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장의 본업인 사진관 '솔진관'도 완도의 명물이 됐다. 고3 때인 2014년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고자 상경했던 그는 약 6년간의 타향생활을 정리하고 2019년 완도로 돌아왔다. 다시 마주한 고향은 학창시절 탈출하고 싶었던 마음이 무색하게 아름답고 매력이 넘쳤다. 사진관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완도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전하는 동시에 예쁘게 찍히고 싶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MZ세대 감수성에 맞는 전략을 짰다. '뽀샵'과 화장법 전수가 대표적이다.


솔진관은 그러나 어른들에게도 중요한 장소가 되고 있다.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찍은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기도 했다.


김 이장은 "평소 잘 챙겨주던 할아버지였는데,지켜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음을 맞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한 번이라도 더 문을 두드리고 병원에 모시고 갈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고백했다. 또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받았던 만큼 세속적인 계산 없이 사람을 믿어주는 그 마음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이장의 목표는 완도를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아직 미혼인 그 스스로가 기꺼이 완도에서 결혼하고 정착해 자녀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는 이장 활동이 막힐 때마다 처음 코 피어싱을 마을 어른들에게 들켰던 순간을 떠올린다고 한다. 괜히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젊은이들만의 멋이 좋다며 건넨 따뜻한 관심과 응원이었다.


김 이장은 "완도에서 태어났으니 완도에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다"면서 "단지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랑을 받은 만큼 마을을 이어가고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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