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6 HaiPress
‘21세기 노벨문학상’이 나아갈
증언문학 가능성 내다본 선구자
“한강 소설은 진실한 예술작품”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호라세 엥달. [호라세 엥달 제공]
“한강 소설은 강력한 진실성을 가진다. 그녀의 소설은 ‘진실’로 받아들여지길 의도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인 호라세 엥달(사진)은 6일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강 소설의 키워드를 ‘진실성(truth)’이라고 말했다.
엥달은 노벨문학상 최종투표권을 가진 스웨덴 한림원 회원 중 한 명으로 약 20년 전 ‘노벨문학상이 21세기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문학사가다. 2001년 12월 나딘 고디머,오에 겐자브로,가오싱젠 등 기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과 한자리에서 ‘증언 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이후 증언 문학에 고점이 주어졌고 23년 뒤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엥달은 서면 인터뷰에서 ‘증언 문학으로서의 한강 소설’에 관한 견해와 세계문학 속에서 동양의 역할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시대의 고통에 대한 증언이라는 노벨상 선정 사유에서 보듯이,한강 작품엔 증언 문학이란 개념이 적용됐다”며 “여기서 말하는 증언은 한강 작가의 개인적 증언의 성격을 가진 게 아니다. 그녀는 과거 사건을 다양한 관계를 활용해 기억해내고,이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진실성을 획득한다”고 설명했다.
엥달은 2002년 출간된 책 ‘증언 문학: 노벨 100주년 심포지엄 논문집’에 수록된 서문 ‘필로멜라의 혀: 증언 문학에 대한 서론’에서 미래의 문학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문학은 단지 개인의 경험 기록을 넘어 ‘집단적 기억과 진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본 것이다. 필로멜라는 그리스신화 속 아테네 공주로,형부에게 겁탈 당한 뒤 혀까지 잘리지만 결국 복수하고 새로 변신하는 인물이다. ‘억압된 상황 속에서도 말하기를 그치지 않는’ 문학이 증언 문학이다.
호라세 엥달이 편집해 2002년 출간된 ‘증언 문학: 노벨 100주년 심포지엄 논문집’ 표지. 노벨문학상의 21세기 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여한 책이다. 헤르타 뮐러,임레 케르테스,나딘 고디머,오에 겐자부로,가오싱젠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에세이가 담겼다. 엥달은 “한강 작품을 이념적으로 편향됐다고 보는 견해가 한국 내에 있음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노벨문학상은 후보자의 예술적 자질만을 고려하지,모든 정치적 고려는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강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의 실제성에 대한 문제는 스웨덴 한림원이 그녀에게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범위를 넘어선다”고도 덧붙였다.
엥달은 한강의 노벨문학상을 통해 그동안 불분명하게 여겨졌던 ‘세계문학’의 개념이 점점 명징해지고 있다는 평도 남겼다.
그는 “이전에는 다소 이상적인 느낌을 주었던 ‘세계 문학’ 개념이 오늘날 점점 더 실체를 얻고 있다. 이는 동양 국가들(작가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해진 부분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학이 세계인의 ‘예술적 부(the artistic wealth)’에 기여한다는 말도 함께 남겼다. 엥달은 “서구 세계에서 볼 때,우리와 먼 문화들이 가진 예술적 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노벨문학상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며 “문학의 미래에 대해 나 스스로 ‘예언자’가 되기를 자제하겠지만 문학이 스스로를 갱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전환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을 띈다”고 말했다.
1948년생인 호라세 엥달은 1997년부터 스웨덴 한림원 회원을 지내고 있으며,1999년부터 2009년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매년 10월 첫째주 목요일에 세계에 발표하는 상임비서직을 맡았다. 덴마크 오르후스대에서 스칸디나비아문학 교수로 재직했고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에 정통해 노벨문학상 선정에 깊이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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