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으로 피워낸 거대한 슬픔...연극 ‘붉은웃음’ 김정 연출가

2024-11-25 HaiPress

연극 ‘붉은웃음’ 김정 연출가


청년 고독사 초래하는 폭력


격정적 몸부림으로 풀어내


국립극단 윤성원의 1인극


내달 1일까지 더줌아트센터

연극 ‘붉은웃음’을 연출한 김정 연출가. “시는 온몸으로,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김수영 시인의 말은 그가 어떤 근원적인 자세를 가지고 시작(詩作)을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김수영이 그랬듯 진중한 태도로,그리고 배우의 몸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는 연출가가 있다. 21일부터 1인극 ‘붉은웃음’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김정 연출가다.

‘붉은웃음’은 청년 고독사를 다루는 1인극이다. 러일전쟁(1904~1905)에서 다리를 잃고 돌아온 참전 용사가 결국 비극적 죽음을 맞는 동명의 러시아 소설을 각색해 현대인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1인극 ‘붉은웃음’에서 유품 정리사가 고독사한 청년의 물품을 정리하는 모습. 김인준 연극은 유품 정리사가 검은 비닐봉지들을 정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대 한켠에 비닐봉지가 산처럼 쌓여있고,방호복을 입은 정리사가 또 다른 비닐봉지들을 가져오는 장면이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 죽은 자의 유품이 계속 더해지는 모습은 애도되지 않는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김 연출가는 “죽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야기로 콜라주처럼 배치했다”며 “수많은 사람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전쟁터처럼 사회 밑바닥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1인극 ‘붉은웃음’에서 윤성원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김인준 1인극 ‘붉은웃음’의 절망적 이미지는 윤성원 배우의 격렬한 몸짓으로 펼쳐진다. 김 연출가는 청년들이 홀로 죽어가는 과정을 무기력한 모습이 모습이 아닌 격정적인 몸부림으로 연출했다.

김 연출가는 “고독사를 맞는 사람은 피폐하고 무기력한 상태지만 그 역시 악을 지르며 세상에 태어나 한때 빛이 나고 아름다운 인간이었을 것”이라며 “신체는 죽어가지만 몸안에서 죽음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와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1인극 ‘붉은웃음’에서 윤성원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김인준 그가 무대에서 몸부림을 선보이는 것은 몸이 말보다 진실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가 외면되고 각자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사는 현대 사회에서 말로써 타인의 마음에 가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인간의 몸부림은 실체적이고 진실하다”며 “입으로만 하는 연기는 잘 믿어지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몸을 (관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연기 이상의 것”이라고 말했다.

80분간 ‘붉은웃음’을 이끄는 윤성원 배우는 2024 국립극단 시즌단원이다. 2022,2023년에 이어 3년 연속 선발돼 올해 연극 ‘천개의 파랑’(연출 장한새) ‘전기 없는 마을’(연출 김연민) 등에 출연했다.

김 연출가는 “윤성원 배우는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서 거대한 슬픔을 만들어내는 배우”라고 말했다.

‘붉은웃음’은 내달 1일까지 서울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1인극 ‘붉은웃음’에서 윤성원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김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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