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이 살짝 줄었어요 양자 네가 알아챘구나

2024-11-18 HaiPress

측정과학 '끝판왕' 양자


"130년 만에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뀝니다."


우리가 일상에 몰두해 있는 동안,질량 단위인 ㎏과 전류 단위인 암페어(A)의 정의가 조금씩 달라졌다. 과학자들이 모여서 질량과 시간의 측정법을 새롭게 적용하면서다. 1㎏은 아주 조금 가벼워졌고,이에 따라 물질의 양과 전류 단위도 미세 조정됐다. 초 단위 시간은 몇 년 내에 길거나 짧아질 전망이다. 인류가 '양자'라는 아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변화들이다.


2018년 11월 16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가 개최됐다. 이날 각국의 과학자들은 ㎏의 재정의에 합의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물체' 대신 변하지 않는 값인 '상수'를 활용해 ㎏을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질량의 단위인 ㎏은 1889년부터 '국제 킬로그램 원기(原器)'로 정의해왔다. 원기는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구성된,높이와 지름이 각각 39㎜(밀리미터)인 원기둥 모양의 물체다. 원기는 지난 100여 년간 약 100㎍(마이크로그램) 정도 가벼워졌다. 백금이 반응성이 낮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며 생기는 변화를 피할 순 없었다.


과학자들은 이날 총회에서 ㎏에 대해 '플랑크 상수'를 사용하자고 뜻을 모았다. 플랑크 상수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상수다. ㎏을 플랑크 상수로 정의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기라는 거시적 수준에서 이뤄졌던 질량 측정을 양자라는 미시적 영역으로 '스텝업' 했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불변의 단위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양자가 측정과학 분야 새 시대를 열고 있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단위 측정의 정밀도를 높이고,양자현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양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단위를 뜻한다. 영어로 양자를 뜻하는 '퀀텀'은 라틴어로 '단위'라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원자 안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원자핵을 발견하고,그 주변의 전자를 찾아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고,중성자 안에는 쿼크라는 것이 있다. 이들 모두가 양자다. 이처럼 양자는 어느 한 종류가 아니라 아주 작은 물질과 에너지를 통칭한다.


㎏을 새롭게 정의한 플랑크 상수 역시 양자를 기반으로 한다. 플랑크 상수는 '키블저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산출한다. 키블저울은 측정 대상에 가해지는 중력과 전자기력을 비교해 고정된 물리 상수 값을 기준으로 측정 대상의 질량을 측정하는 장비다. 질량을 측정할 때 핵심적으로 쓰이는 원리가 '조지프슨 효과'와 '양자홀 효과'로 불리는 양자현상이다.



조지프슨 효과는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의 거리를 수 ㎚(나노미터) 정도로 접근시키면 초전도체끼리 접촉돼 있지 않더라도 이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고,양자홀 효과는 2차원 전자기체에서 수직 방향으로 자기장이 작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조지프슨 효과는 전압의 표준,양자홀 효과는 저항의 표준이 된다"며 "두 표준을 기준으로 질량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도량형총회는 ㎏ 외에도 물질의 양(mol·몰),전류(A·암페어) 등을 양자현상을 활용해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질량의 정의에 변화가 발생하면서 다른 단위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몰은 탄소-12의 질량을 바탕으로 정의됐다. ㎏ 정의가 바뀌면서 몰의 정의도 바뀌게 됐다. 탄소-12의 12그램(g)에 있는 원자 개수를 센 결과 수인 '아보가르도수'로 1몰을 규정했다. 암페어는 전자 1개가 가진 전기의 양을 의미하는 '기본전하(e)' 값에 기반해 정의하기로 했다.


양자가 측정과학에서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영역은 '시간'이다. 세계협정시(UTC)는 전 세계가 공통의 시간을 유지할 있도록 동기화된 과학적 시간의 표준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이를 이용해 1초 시각을 맞추고 있으며 통신,내비게이션 등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UTC의 1초는 원자시계로 정의된다. 원자시계는 원자가 1초 동안 움직이는 횟수인 '고유진동수'를 활용한다. 원자의 진동수와 동일한 주파수를 가지는 마이크로파나 레이저를 쪼인 후 나오는 신호값을 측정해 1초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현재 UTC상의 1초는 세슘 원자의 고유진동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세슘 원자는 고유진동수가 1초에 91억9263만1770번이다. 세슘 원자가 91억9262만1770번 진동하는 것을 1초로 정의한다는 의미다.


최근 양자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양자계측학'이란 학문 분야까지 새롭게 등장했다. 양자를 활용해 측정의 정확도를 어떻게 높일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자계측학으로 원자시계 분야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세슘 원자 기반의 원자시계보다 성능이 약 100배 더 좋은 '광격자 원자시계'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광격자 원자시계는 이터븀(Yb) 원자를 활용한다. 이 원자의 고유진동수가 518조2958억3659만863.6번이다. 세슘 원자보다 고유진동수가 약 5만6000배 높다. 과학자들은 광격자 원자시계를 활용해 2030년께 초 역시 재정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양자를 기반으로 한 측정 과학의 발전 속도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과 첨단 산업기술이 고도화되면 측정 측면에서 점점 더 높은 정확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측정표준 및 측정과학기술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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